[서평] 이범석 장편소설 『아프지만 아름다운 사랑』

끝내 전하지 못한 한마디를 간직한 모든 이들에게 전하는 소설

 

『아프지만 아름다운 사랑』은 한 사람의 부고 기사로 시작한다. 늦은 밤 포털 검색창에 습관처럼 이름을 입력하던 수빈이 연예부 기자 출신 이민호의 죽음을 알게 되는 장면이다. 소설은 곧 2009년 가을로 거슬러 올라가 두 사람의 만남을 처음부터 따라간다. 결말을 먼저 보여주고 과정을 쌓아가는 이 액자식 구성은 독자가 끝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오히려 긴장의 동력으로 바꾼다. 독자는 어떻게 끝나는가가 아니라 어디서 어긋났는가를 묻게 된다.

 

이야기는 취재 현장에서 출발한다. 신인 걸그룹의 인터뷰 자리에서 기자 민호는 대기실 구석 피아노 앞에 앉은 수빈을 눈여겨본다. 몇 해 뒤 우연한 전화 한 통으로 다시 만난 두 사람은 소형 기획사의 정산 착취라는 현실의 문제와 마주한다. 육 년을 준비하고도 데뷔하지 못했고 한 푼의 정산도 받지 못한 채 해체된 그룹의 사연은 연애 서사의 배경에 머물지 않는다. 탐사팀의 취재, 기획사 대표의 협박과 회유, 징역 십오 년의 선고로 이어지는 과정은 현장을 아는 사람의 구체성을 갖추고 있어 사랑 이야기에 사회적 무게를 더한다.

 

 

그러나 작품의 중심은 사랑이 쌓이고 무너지는 과정에 있다. 양평에서의 프로필 촬영, 새벽 두 시에 파주까지 달려간 차, 수원 아파트 옆 팔각정에서 수빈이 먼저 건넨 고백, 속초의 밤바다까지 3부는 두 사람이 함께한 계절을 소박하고 따뜻한 장면들로 채운다. 큰 사건 없이 쌓이는 이 작은 순간들이 이후의 상실을 더 아프게 만드는 장치다. 팔각정과 막차, 포털 검색창처럼 반복해서 등장하는 사물과 공간은 상징으로 기능하며 서사를 하나로 묶는다.

 

이 소설이 가장 공들여 그리는 것은 오해가 만들어지는 방식이다. 갈등의 직접적인 원인은 민호의 동창이자 배우인 설희의 이간질이지만, 작품은 이를 단순한 악역의 음모로 처리하지 않는다. 베트남, 몽골, 미얀마, 중국으로 이어지는 해외 공연 답사에서 두 사람은 한 번도 크게 다투지 않는다. 저녁 식사 뒤 각자의 방으로, 각자의 술잔으로 흩어질 뿐이다. 설희에게는 오랜 짝사랑의 사연과 스스로를 향한 자책이 주어지고, 수빈의 침묵에도 이유가 있다. 진짜 비극은 악의가 아니라 묻지 못한 마음에서 나온다는 것이 작가의 시선이다. 수빈이 뒤늦게 "그때 한 번만 직접 물어봤더라면" 하고 후회하는 대목은 이 소설의 주제를 가장 선명하게 드러낸다.

 

 

문장은 담백하다. 감정을 과장하지 않고 장면과 행동으로 보여주는 편이어서, 민호가 술과 휴대폰 속 사진에 기대어 무너져가는 후반부에서도 신파로 흐르지 않고 절제를 유지한다. 다만 일부 대목에서 감정선의 설명이 반복되고, 설희의 동기가 다소 단선적으로 느껴지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래도 이 단점은 인물들이 서로를 끝내 이해하지 못한 채 엇갈린다는 작품의 정조와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마지막 장에서 수빈은 민호가 하던 일을 이어받는다. 포털 검색창에 이름을 입력하는 일이다. 사랑은 때로 말이 되어 남지 못하고 그리움만으로 오래 남는다는 작가의 말은 이 장면에서 가장 큰 설득력을 얻는다. 화려한 무대 뒤편에서 조용히 사라진 사람들, 그리고 끝내 전하지 못한 한마디를 간직한 모든 독자에게 이 소설은 오래 남을 것이다.

작성 2026.10.11 12:25 수정 2026.10.11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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