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에게 보내는 영혼의 편지] 단종
안녕하세요. 마음의 쉼이 필요한 그대에게 빛처럼 살다 간 영혼들의 편지를 전하는 영혼지기 ‘자인’입니다. 지금, 이 순간, 그대의 마음이 잠시 비어 있다면 그 틈으로 영혼의 편지를 함께 열어보려 합니다.
오늘은 열두 살 어린 나이에 조선의 왕이 되었지만, 열일곱 살의 나이에 영월에서 생을 마감해야 했던 조선의 여섯 번째 왕, 그리고 240여 년이 지난 뒤 다시 왕의 이름을 되찾은 단종이 보내온 편지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사랑하는 그대에게.
나는 1441년 세종의 손자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문종이었고 어머니는 현덕왕후 권 씨였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내가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마저 내가 열한 살이던 때 세상을 떠났습니다. 나는 그렇게 어린 나이에 세상에 홀로 남겨졌습니다. 그리고 1452년, 열두 살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습니다.
조선이라는 거대한 나라의 임금이 되었지만, 나는 아직 어른이 아니었습니다. 나를 대신해 나라를 이끌어줄 사람들이 필요했습니다. 대신들과 집현전 학사 출신들이 나를 보좌했습니다. 하지만 왕의 자리는 왕관만으로 지켜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에게는 수양대군이라는 숙부가 있었습니다. 1453년 계유정난으로 수양대군이 정치적 실권을 장악하면서 나의 삶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나는 1455년 왕위를 내놓고 상왕으로 물러났습니다. 열다섯 살이었습니다. 왕이 된 지 겨우 몇 년이었습니다. 나는 왕좌를 내려놓았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나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습니다. 1457년 단종복위운동이 실패하자 나는 노산군으로 강등되었고, 강원도 영월로 유배되었습니다.
영월에는 청령포가 있습니다. 남쪽은 절벽이고 동·북·서쪽은 강물이 휘돌아 흐르는 곳입니다. 배를 타지 않으면 밖으로 나가기 어려운 곳이었습니다. 나는 그곳에서 세상과 떨어져 지냈습니다. 어느 해 여름 큰 홍수가 나면서 나는 청령포를 떠나 영월 관풍헌으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그곳에서 마지막 시간을 보냈지요. 그리고 1457년 10월 24일, 나는 열일곱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내가 죽은 뒤 영월호장 엄흥도가 내 시신을 거두어 장사 지냈다고 하지요.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사람들은 다시 나를 왕으로 기억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왕으로 기억되기보다 한 사람의 마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외로웠던 한 아이, 갑자기 너무 큰 책임을 짊어져야 했던 아이, 어쩌면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었을지도 모르는 한 사람으로 나를 바라봐준다면 고맙겠습니다. 그리고 그대가 오늘 만나는 사람도 그렇게 바라보아 주십시오. 그 사람의 직함을 보기 전에 사람을 보고, 그 사람의 재산을 보기 전에 마음을 보고, 그 사람의 실패를 보기 전에 그가 견뎌온 시간을 보아주십시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청령포를 하나씩 품고 살아갑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아 보여도 마음속 어딘가에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외로운 강 하나가 흐르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니 너무 쉽게 사람을 판단하지 마십시오. 나는 열일곱 살에 삶을 끝냈지만, 그대들은 지금도 살아 있습니다. 그것은 아직 늦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그대는 부디 살아 있는 동안 사람을 사람으로 바라보십시오. 사람의 삶은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보다, 누군가의 마음속에 어떤 사람으로 남았느냐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열일곱 살에 생을 마친 단종이 그대에게 이 편지를 띄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