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판결에서 확정된 자녀 면접교섭의 이행을 명하면서 가정법원이 기존 판결에 없던 새로운 조건을 추가할 수 있을까.
대법원이 이에 대해 명확하게 선을 그었다.
대법원은 2026년 8월 24일 2026으552 이행명령 사건에서, 가정법원이 면접교섭 이행명령을 내리면서 기존 이혼 판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조건을 새롭게 추가해 당사자의 면접교섭권을 실질적으로 제한한 것은 허용될 수 없다고 판단해 원심결정을 파기·환송했다.
이번 결정은 단순히 특정 면접교섭 조건 하나가 적절했는지를 판단한 사건을 넘어선다.
이미 판결 등을 통해 확정된 의무를 실제로 이행하도록 하기 위한 ‘이행명령’의 법적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나아가 자녀의 복리를 이유로 기존 면접교섭 조건을 변경할 필요가 있을 때 법원이 어떤 절차를 거쳐야 하는지를 분명히 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 사건의 시작…“판결대로 면접교섭하게 해달라”
사건의 신청인과 피신청인은 앞선 이혼소송을 통해 자녀의 친권자 및 양육자와 면접교섭에 관한 내용을 판결로 정했다.
당시 판결에서는 피신청인을 자녀의 친권자 및 양육자로 지정하면서 신청인이 자녀가 성년이 될 때까지 일정한 일정과 방법에 따라 면접교섭할 수 있도록 하고, 이에 필요한 협조의무까지 정했다.
그러나 이후 신청인은 상대방이 판결에서 정한 면접교섭 일정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신청인은 원심법원에 가사소송법 제64조에 따른 면접교섭 허용 의무의 이행명령을 신청했다.
여기까지는 이미 판결로 확정된 면접교섭권을 실제로 행사할 수 있도록 법원에 이행을 요구하는 전형적인 절차였다.
문제는 원심법원이 이행명령을 내리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 원심, 판결에 없던 ‘비혈족 여성 동석 금지’ 조건 추가
원심법원은 피신청인에게 신청인의 자녀 면접교섭을 허용하도록 이행명령을 내렸다.
면접교섭 일정과 방법 등은 기존 이혼 판결과 동일하게 정했다.
그러나 한 가지 조건이 새롭게 추가됐다.
“신청인이 사건본인을 면접교섭할 시 사건본인의 혈족이 아닌 여성이 동석하지 않도록 한다.”
기존 이혼 판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조건이었다.
결국 쟁점은 명확했다.
가정법원이 이미 확정된 판결의 이행을 명하는 과정에서 판결에는 없었던 새로운 면접교섭 제한조건까지 추가할 권한이 있는가였다.
대법원의 판단은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 대법원 “이행명령은 판결을 바꾸는 절차가 아니다”
대법원이 이번 결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제시한 법리는 이행명령의 본질이다.
가사소송법 제64조에 따르면 판결·심판·조정조서·조정을 갈음하는 결정 또는 양육비부담조서 등에 따라 금전 지급이나 유아 인도, 자녀와의 면접교섭 허용 등의 의무를 부담하는 사람이 정당한 이유 없이 이를 이행하지 않는 경우 가정법원은 당사자의 신청에 따라 일정 기간 내 의무를 이행하도록 명할 수 있다.
이행명령을 따르지 않을 경우 과태료 또는 감치 등 제재가 뒤따를 수 있다.
하지만 대법원이 주목한 것은 이 제도의 목적이다.
이행명령은 새로운 권리관계를 판단하는 재판이 아니라 **이미 판결 등을 통해 확정된 권리를 현실에서 실현하도록 촉구하는 ‘이행확보제도’**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행명령 절차를 이용해 기존 판결에서 확정된 의무의 내용을 변경하거나 상대방에게 새로운 의무를 만들어낼 수는 없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단이다.
대법원은 이와 관련해 기존 대법원 2016. 2. 11. 자 2015으26 결정과 2025. 5. 23. 자 2025으517 결정도 근거로 제시했다.
■ 핵심은 ‘집행’과 ‘권리변경’의 구별
이번 결정을 이해하는 핵심은 집행과 권리변경을 구분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혼 판결에서 매월 특정한 일정에 자녀를 면접교섭하도록 확정됐는데 양육자가 정당한 이유 없이 이를 계속 방해한다면, 이행명령을 통해 판결에서 정한 의무를 지키도록 요구할 수 있다.
하지만 이행명령을 내리면서 판결에는 없었던 새로운 조건을 추가해 면접교섭할 수 있는 사람이나 방법, 범위를 제한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것은 단순히 기존 판결을 ‘이행시키는 것’을 넘어 확정된 면접교섭권의 내용 자체를 바꾸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이행명령의 형식을 이용해 판결로 확정된 권리나 집행권원의 효력을 사실상 소멸시키거나 변경시키는 처분을 할 수 없다고 분명히 했다.
■ 그렇다면 면접교섭 조건은 절대 변경할 수 없나
그렇지는 않다.
자녀의 면접교섭권은 일반적인 금전채권과 다른 특성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녀의 연령이나 건강, 생활환경, 부모와 자녀의 관계 등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현행 민법 제837조의2 제3항은 자녀의 복리를 위해 필요한 경우 가정법원이 당사자의 청구 또는 직권으로 면접교섭을 제한·배제·변경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대법원도 면접교섭 조건 자체가 절대 변경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은 아니다.
핵심은 **‘어떤 절차를 통해 변경하느냐’**다.
면접교섭권을 제한·배제·변경하려면 가사소송법이 정하고 있는 별도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대법원은 이러한 사건이 가사소송법상 마류 가사비송사건에 해당하고, 조정전치주의와 심판절차에서의 필요적 심문 등 법률이 예정하고 있는 절차에 따라 진행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 “자녀 복리” 중요하지만 적법한 절차 역시 중요
이 부분은 이번 결정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특히 중요하다.
면접교섭 사건에서 가장 우선돼야 할 가치가 자녀의 복리라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자녀의 복리를 이유로 면접교섭 조건을 변경할 필요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곧바로 이행명령 절차에서 새로운 제한조건을 부가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면접교섭권을 실질적으로 제한하거나 변경하려면 당사자가 자신의 입장을 충분히 밝힐 수 있는 법정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 이번 대법원 결정의 핵심이다.
대법원은 면접교섭 허용 의무에 관한 이행명령이 실질적으로 면접교섭권에 대한 제한·배제·변경 처분과 동일한 결과를 가져온다면 가사소송법 제64조의 이행명령 범위를 벗어나 허용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 대법원 “원심 추가조건, 면접교섭권 실질적으로 제한”
대법원은 원심이 추가한 ‘비혈족 여성 동석 금지’ 조건을 이러한 법리에 비춰 판단했다.
원심이 기존 판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조건을 새롭게 추가하면서 신청인이 원래 이혼 판결에서 인정받은 면접교섭권을 행사하는 데 제한 또는 배제되는 결과가 발생했다고 본 것이다.
이는 기존 판결에서 확정된 의무 가운데 상대방이 이행하지 않은 일부를 이행하도록 명한 것으로 볼 수 없었다.
오히려 확정된 면접교섭권의 내용을 실질적으로 제한·배제·변경하는 것과 같은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단이다.
결국 대법원은 원심이 이러한 추가 준수사항을 부과한 것은 가사소송법 제64조에 따른 이행명령의 범위를 벗어난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갔다.
■ 단순한 절차상 흠결 넘어 ‘헌법상 재판받을 권리’ 문제로 판단
이번 결정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대법원이 원심의 문제를 단순한 이행명령 범위 위반으로 끝내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법원은 원심결정에 적법한 절차에 따른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해 재판에 영향을 미친 헌법 위반의 잘못이 있다고 판단하고 원심결정을 파기·환송했다.
이는 상당한 의미가 있다.
권리의 내용을 변경하려면 그에 맞는 적법한 재판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단순한 이행확보 절차에서 기존 권리를 실질적으로 변경한다면 당사자가 법률이 보장하는 충분한 절차적 권리를 행사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 사건은 면접교섭권의 내용뿐 아니라 법원이 개인의 권리를 제한할 때 지켜야 할 절차적 정당성까지 문제 삼은 결정으로 해석할 수 있다.
■ TJ뉴스 법률분석① 이행명령은 ‘새로운 재판’이 아니라 ‘기존 재판의 실현’
이번 대법원 결정에서 가장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은 이행명령의 법적 성격을 다시 명확히 했다는 점이다.
이행명령은 이름 그대로 이미 존재하는 의무의 이행을 명하는 제도다.
법원이 기존 판결을 다시 해석해 새로운 조건을 붙이거나 기존 권리의 범위를 재설계하는 절차가 아니다.
대법원은 이를 민사집행법상 강제집행과 비교하면서, 권리를 확정하는 절차가 아니라 이미 확정된 권리를 실현하는 절차의 일부라는 점에서는 강제집행과 다르지 않다고 판단했다.
이는 향후 양육비나 자녀 인도, 면접교섭 등 다른 가사사건의 이행명령에서도 중요한 판단기준이 될 수 있다.
■ TJ뉴스 법률분석② ‘좋은 취지’라도 절차를 건너뛸 수 없다
가사사건에서는 법원이 자녀의 복리를 고려해 세부적인 조건을 정할 필요가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번 결정은 결과의 타당성과 절차의 적법성은 별개의 문제라는 점을 보여준다.
가령 새로운 제한조건이 자녀 보호를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되더라도, 그것을 부과할 수 있는 법적 근거와 절차가 없다면 이행명령 과정에서 임의로 추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별도의 면접교섭 제한·배제·변경 절차를 통해 판단해야 한다.
이러한 원칙은 법원의 재량을 무조건 제한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당사자의 절차적 권리를 보장하면서 자녀의 복리에 관한 사실관계도 충분히 심리하도록 하는 장치로 볼 수 있다.
■ TJ뉴스 법률분석③ 면접교섭 갈등 당사자들에게도 중요한 기준
이번 결정은 실제 이혼가정에도 시사점이 있다.
면접교섭 판결을 받은 뒤 양육환경이나 자녀의 상황이 달라졌다고 해서 한쪽 당사자가 임의로 기존 면접교섭 조건을 바꾸는 것은 분쟁을 확대할 수 있다.
반대로 기존 판결의 면접교섭 조건을 상대방이 정당한 이유 없이 이행하지 않는다면 이행명령이라는 제도를 활용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판결대로 이행하게 하는 문제’와 ‘판결 내용을 변경해야 하는 문제’를 구분하는 것이다.
전자는 이행명령의 영역이지만, 후자는 자녀의 복리를 중심으로 면접교섭 제한·배제·변경 여부를 판단하는 별도의 절차가 필요하다는 것이 이번 대법원 결정에서 확인된 기준이다.
■ 면접교섭권 분쟁 실무에 미칠 영향은
이번 결정은 향후 가정법원의 이행명령 실무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법원이 면접교섭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구체적인 준수사항을 부과할 때 그것이 단순히 기존 판결의 내용을 명확하게 집행하도록 하는 수준인지, 아니면 기존 면접교섭권의 범위를 실질적으로 좁히거나 변경하는 것인지 면밀하게 구별할 필요가 생겼다.
후자라면 이행명령이 아니라 별도의 면접교섭 제한·배제·변경 절차를 이용해야 한다.
이 기준이 중요한 이유는 면접교섭권이 부모만의 이해관계에 국한되지 않기 때문이다.
면접교섭은 자녀의 생활과 정서적 안정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만큼, 상황 변화에 따른 탄력적인 조정이 필요하면서도 그 과정에서 적법한 절차와 충분한 심리가 함께 보장돼야 한다.
■ “판결은 판결대로 집행하고, 변경은 적법한 절차로”
이번 대법원 결정의 의미를 압축하면 **‘집행과 변경의 경계를 지켜야 한다’**는 원칙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이미 확정된 면접교섭권을 상대방이 이행하지 않는다면 이행명령을 통해 그 이행을 촉구할 수 있다.
그러나 자녀의 복리 등을 이유로 기존 면접교섭의 범위를 제한하거나 새로운 조건을 부과할 필요가 있다면 법률이 정한 별도의 절차를 통해 판단해야 한다.
법원이 이행명령이라는 비교적 제한된 절차를 이용해 기존 판결의 내용을 사실상 변경한다면, 당사자는 원래 법률이 예정한 심리와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자신의 권리를 제한받게 될 수 있다.
대법원이 이번 사건에서 원심결정을 파기·환송하면서 ‘적법한 절차에 따른 재판을 받을 권리’라는 헌법적 문제까지 명시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번 결정은 앞으로 면접교섭을 둘러싼 갈등에서 자녀의 복리를 실질적으로 보호하면서도 당사자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변경할 경우 반드시 법률이 정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 이 기사는 대법원이 공개한 2026년 8월 24일자 중요결정 요지(2026으552 이행명령)를 토대로 판결의 사실관계와 법리를 확인한 뒤, TJ뉴스가 이행명령제도의 법적 성격, 면접교섭권 변경절차, 헌법상 적법절차 및 가사재판 실무에 미치는 의미를 추가 분석해 독자적으로 구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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