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정책은 늘 현장과 거리를 두고 만들어진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러나 그 ‘거리’에도 등급이 있었다.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적어도 탁상 위에서나마 치열한 ‘공론(公論)’을 거친 정책이었다. 종합부동산세, 재건축 규제 등 시장에 미친 파장은 컸지만, 그 이면에는 나름의 논리와 토론, 그리고 정책 목표에 대한 신념이 있었다. 실무와 괴리된 결과를 낳았을지언정, 적어도 무엇을 위해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는 설명할 수 있는 정책이었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한 단계 더 나아가 ‘이론(理論)’에 갇힌 정책이었다. 임대차 3법과 각종 규제 정책은 촘촘한 이론적 설계를 바탕으로 했지만, 정작 시장의 실제 작동 방식과는 어긋났다. 이론은 정교했으나 현실은 이론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그 간극만큼 전세 대란과 매매가 급등이라는 후유증이 서민의 몫으로 돌아갔다. 노무현 정부가 '공론'의 정책이었다면, 문재인 정부는 '이론'의 정책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지금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이 계보에서마저 벗어나 있다. 공론도 아니고 이론도 아닌, 이른바 '탁상 기분(氣分)'의 정책이다.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른 발표, “일단 해보고 아니면 말고” 식의 정책 실험, 그리고 시장의 혼란과 반발에 대해 “그럼 어쩌라는 것이냐”는 식의 반문까지, 이는 정책 결정의 일관된 원칙이나 철학이 실종되었다는 방증이다. 공론에는 최소한의 토론이 있었고, 이론에는 최소한의 설계도가 있었다. 그러나 기분에는 설계도도, 토론도 없다. 오직 그때그때의 판단과 여론의 향배만이 있을 뿐이다.
문제는 이 세 번째 단계가 앞선 두 정부의 시행착오보다 서민에게 훨씬 가혹할 수 있다는 데 있다. 공론과 이론에 기반한 정책은 비록 실패하더라도 예측 가능성이라는 최소한의 안전판을 제공한다. 시장 참여자들은 정책의 방향성을 어느 정도 가늠하고 대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원칙 없이 그때그때 바뀌는 ‘기분’의 정책 앞에서는 예측도, 대비도 무력해진다. 실수요자는 내 집 마련의 시점을 가늠할 수 없고, 다주택자와 임대인은 임대차 시장에서 어떤 셈법으로 움직여야 할지 알 수 없으며, 그 불확실성의 무게는 고스란히 가장 힘없는 서민층으로 흘러간다.
노무현의 공론, 문재인의 이론을 거쳐 온 서민들은 이미 부동산 정책의 쓴맛을 충분히 보았다. 그러나 원칙도 논리도 없는 ‘기분’의 정책 앞에서 서민들이 치러야 할 대가는 그보다 더 클 수 있다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지금 정부에 필요한 것은 화려한 슬로건이나 즉흥적인 대책 발표가 아니라, 최소한 그 정책이 왜 필요한지, 무엇을 지향하는지를 국민 앞에 설명할 수 있는 최소한의 논리와 일관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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